2006년 4월 내 나이 26세.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빠른 결혼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 사람과 꼭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에 반대하는 아버지를 설득하고, 신랑은 무릎 꿇고 6시간을 간청한 끝에 우리는 힘겹게 결혼을 했습니다. 그 결혼이 어느덧 올해로 9년이 됩니다. 짧다면 짧지만 우리에게는 긴 시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직 우리는 아이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서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5살 때부터 일해 온 나는, 결혼하면 딱 2년만 쉬고 싶다고 신랑에게 말했습니다.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추억들을 만들며 뒤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신혼여행을 다녀온 다음 날 아버지는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나는 병원비를 위해 다시 일을 해야 했습니다. 결혼하자마자 생긴 일이라 남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나 봅니다. 그 후 아버지는 1년간 투병하시다 반신마비로 조금씩 운동하며 나아지시나 했더니, 황달 증세로 암 말기 판정을 받으시고 2009년 8월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나의 2년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쉴 수 있는 팔자가 아니려니…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큰 슬픔의 고비를 넘고 나서야, 이제야말로 좀 일을 쉬며 남편과 어린 시절에 갖지 못한 추억을 만들어보려나 했습니다. 그러나 직업이 한국무용가인 남편은 그즈음 시립무용단에서 ‘상임안무자’라는 직책을 받고 2년간 지방으로 내려가게 됐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말 부부가 되었습니다. 산 넘어 산이라고, 나의 작은 바람은 그렇게 생각 같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바쁘게 살다 보니 우리는 2세 계획도 미루어야 했습니다.

 결혼하면 일을 쉬고자 했던 것이 결코 나 자신을 위해 좋기만 한 일은 아니었던가 봅니다. 30여 년을 일만 하다가 쉬려니 정작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그러다 보니 1년이 2년 되고 그렇게 난 점점 평범한 아내, 주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쉬는 동안 나 자신의 존재성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출구 없는 내면의 굴레를 맴돌다 보니, 그렇게 내게도 우울증이라는 것이 찾아왔습니다. 많이 힘들었습니다. ‘난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끝없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렇게 지방에서 2년간 일을 마치고 남편이 돌아왔을 땐, 나에게는 나도 모를 만큼의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런 나 때문에 남편도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하지만 늘 “미안해요~”, “힘내세요~”라고 말하며 날 위로하고 용기를 준 것도 바로 남편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여보, 연극 한번 해볼래요? 당신이 TV에서 그동안 많은 활동을 하면서도 정작 무대 위에서의 관객과의 호흡은 많지 않았으니…, 연극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어때요?”
 

 나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스스로를 엉망으로 느끼던 나날들 위에 불쑥 새로운 이름의 싹을 틔우기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날 이후 남편은 공연장을 대관해서 우선 무작정 해보자고 하였고, 난 저항했습니다. 긴 시간 의기소침해져 있던 나 스스로를 이겨낼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추진력으로 공연장은 이미 대관했고 정작 중요한 대본이 없어 거의 포기할 즈음, 남편의 지인으로부터 대본 하나가 왔습니다. <첼로의 여자>라는 작품이었습니다. 시놉시스만 읽고도 나는 ‘이거다!’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프랑스 극작가 기 프와시의 작품을 각색한 1인극으로, 우울증을 안고 살아가는 중년여성의 이야기였습니다. 바로 내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무대에 올리기에는 시간도 너무 부족하고, 모노드라마를 해보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끝내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남편은 마지막으로 힘주어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 이재은이야. 혼자서 장충체육관을 만석으로 채우며 마당놀이 공연을 한 달간 해낸 사람이라고. 왜 자신이 없어. 당신이야말로 누구보다 잘할 수 있어!”

 

 남편이 보여주는 신뢰에 눈물이 났습니다.

 너무도 간절했고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2012년 6월, 그렇게 이재은의 모노드라마 <첼로의 여자>를 무대에 올렸고,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보며 배우 이재은을 기억해주었습니다. 그 후로 <선녀씨 이야기><샤먼아이><각시품바>를 공연했고, 지금은 <숨비소리>라는 뜻깊은 작품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부부로 산다는 것, 서로를 믿어준다는 것.

 

 행복이란 그 믿음의 울타리 밑에서 잠드는 봄바람 같은 것이겠지요….

오늘도 내 곁을 지켜주는 봄바람이 말합니다.

 

 “여보 수고 많았어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