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정은영

 

7월 7일 저녁 서울시청에서 ‘우리가 밀양이다’라는 제목으로 ‘밀양 송전탑 반대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8년 만에 얻어낸 40일의 전문가협의체 협의 기간은 한전 측의 불성실한 대응으로 파행된 채 8일로 끝났다. 한국전력공사는 2007년 울진 신고리핵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으로 운송하기 위해 ‘765kV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공사를 시작했다. 765킬로볼트 초고압 송전 선로 90.5킬로미터에 162기 송전탑이 세워지며 이 가운데 69기 철탑이 밀양 부북면, 상동면, 산외면, 단장면을 지나며 마을, 학교, 논 가까이 들어선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이재묵(77세) 노인회장님은 서른 살에 도시로 나가 살다 예순에 귀향했다. 40년 전만 해도 여수마을은 호롱불 밝히며 ‘초상나면, 하루씩 일해주고 쌀 한 그릇씩 부조하며’ 살았다. 한지에 붓으로 쓴 마을 친목계 장부를 보니 1975년 계원은 70명, 첫 상을 당한 집 장사를 치르고 온 날 저녁 전깃불이 들어왔다. ‘울 엄마 며칠만 살았으면, 전깃불 보고 죽었을 낀데…’라고 아들이 슬피 울었다고. 정부지원에 30년 융자를 받아 공동으로 놓은 전기였다. “백열등 집집마다 달아놓고, 그래도 밝았지.” 그러나 30여 년 뒤 ‘전기’ 때문에 터전을 빼앗기는 일이 벌어질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13년 전 부산서 귀농한 백영민 님(61세)은 2005년, 마을에 송전탑 지나가니 가보자는 이장 연락을 받았다. “전봇대 하나 세우는 줄 알았죠. 당시는 백지화나 탈핵을 말한 것도 아닙니다. 국책사업이니 마을 없는 곳으로 700미터만 물러 달라는 정도였어요. 지금 ‘13개 보상안’에도 들어 있는데, 그 때 한전은 무조건 안 된다 했습니다.” ‘300미터 마을 앞산 초고압선을 머리맡에 이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안 마을분들이 여러 번 탄원했지만 한전은 강제수용을 통보해왔다. 2005년 12월 5일 밀양 한전 앞에 여수마을 송전탑반대 첫 시위가 열렸다. 사람들은 비웃었지만, 밀양 4개면과 창녕군이 송전탑반대대책위를 꾸렸다.

 

 

송전탑은 핵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도시 소비자에게 보내기 위해 산과 논밭을 가리지 않고 세운다. ‘전원개발촉진법’에 따라 주민이 평생 지켜온 땅을 강제로 빼앗고 철탑 자리와 송전 선로 아래 땅(선하지)만 보상지역이 된다. 송전탑 주변은 몹쓸 땅으로 변해버리지만 아무 보상도 없다. “철탑이 들어선 토지는 반경 몇 미터 안에 강아지 집을 지어도 한전 허가를 받아야 한답니다. 누가 와서 집을 짓겠어요. 도대체 뭐를 할 수 있습니까?”

 

여수마을에 들어서는 765킬로볼트 초고압 송전탑은 45층 건물 높이 145미터다. 국제 암연구소는 고압 송전선로 전자파를 발암가능 물질로 분류하는데, 전자파는 무려 833미리가우스, 전자레인지 열 배다. 주민들은 국제 기준인 4미리가우스 아래로 맞춰 달라 했지만, 한전은 ‘안전하다’만 되풀이할 뿐이다. 어르신들은 송전탑 진실을 알기 위해 765킬로볼트 송전탑이 세워진 당진, 태백을 찾아다녔다. “벌들도 못 산답디다. 수정을 못 하니 농사도 안 돼요. 비 오는 날엔 웅웅 거슬릴 정도로 소리가 나고, 철탑 아래 가면 머리가 쫙 서는 느낌이 든대요.” 2008년 갈등조정위원회에서도 송전탑 전자파를 둘러싼 양쪽 전문가 발표는 전혀 달랐다. “우리 쪽 전문가는 ‘765 송전탑에 낙뢰가 떨어지면 핵폭탄 17배 위력이 있다’ 했어요. 나중에 정부 쪽 전문가에게 왜 다르냐 물었더니 ‘나도 당신네 돈 받고 왔으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더라고.” 이재묵 어르신이 헛웃음을 짓는다.

 

△ 김영자 님(57세)이 근처 송전탑 예정지를 가리키고 있다. 765킬로볼트 초고압 송전탑은 45층 고층건물 크기로 주민의 땅과 삶을 파괴한다.

 

마침 정태호 상동면 면장이 마을을 방문했다. “전원개발촉진법은 개발도상국일 때 일이지, 형평에 맞게 해야 하는데, 주민들이 재산권 행사도 못 해요. 보상기금도 주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기 어렵고요. 이번 전문가협의회에서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이 나와야 해요.” 길가 송전탑예정지 안내판이 가리키는 쪽을 보니 봉우리 근처가 파인 듯 보였다. 공사를 강행하며 나무를 벤 탓이다.

 

칠팔십 어르신들이 삶을 걸고 싸운 9년, 문제도 대안도 주민들이 찾았다. 한전이 부산에서 서울까지 전자파와 전기손실 없는 초전도체를 개발했다며 2009년 상용화 계획을 발표한 때가 9년 전이다. “십 년 넘었는데 한전은 지금껏 세금으로 뭐했습니까?” 345킬로볼트로 낮춰 두 선로를 땅에 묻는 방법을 비롯해 대안이 있는데도, 한전이 받아들이지 않는 배경이 의심스러울 뿐이다. 최근 이명박 정권 때 아랍에미레이트 원전수출용 모델 때문에 765송전탑이 필요했다는 것이 알려졌지만, 이미 2007년 초고압 송전탑이 필요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는 ‘주민이 우선이니 충분히 협의한 뒤 공사하라’고 했고, 이명박 때는 입을 닫고 있었는데, 박근혜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시킵니다.” ‘신고리 핵발전소 5, 6호기만 안 지으면 송전탑도 필요없다’는 사실을 안 뒤 대책위는 ‘탈핵’으로 돌아섰다. “핵이 뭔지도 몰랐어요. 에너지정책부터 바꿔야 해요. 대책위 출범할 때 위원장 사모님이 ‘한전이 얼마나 대단한지 대통령 할아버지가 와도 못 막는다고 하는 말에 충격 받았다’고 하더라고예. 우린 헌법으로 싸우는 겁니다.” 올 초 한전 본사 앞 단식농성에도 참여했던 백영민 님이 눈시울을 붉혔다. 김영자 님도 송전탑 싸움하면서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헌법 제1조 제 1항을 알았다고 했다. “정부 하는 꼴이 인간 존엄성은 대기업사람들에게만 있지 우리한텐 없는가 봐예. 돈 필요 없어요. 이대로 살고 싶어예. 이게 목숨입니더.”

 

△ 여수마을 김상옥 할머니(80세). 여수마을 할머니들은 노지깻잎 농사로 생계를 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