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생물 다양성과 생물권이 더욱 황폐화되는 것을 막을 윤리적 책임과 기회가 있으며, 우리는 이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다.”(제주 선언문) 하지만 강정마을의 부당한 현실을 경험한 이들이 요청하는 것은 ‘제주 선언문’의 공허한 문장이 아니라, 제주해군기지 문제해결을 위한 한국 정부의 민주 절차에 따르는 평화적인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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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사라질 목록들

글 윤상훈


‘바당의 어멍’ 제주해녀를 매수하다

제주에서 사라질 멸종위기종를 꼽으라면 단연 첫 번째가 ‘제주해녀’이다. 제주특별자치도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11년 말 기준 현직 잠수어업인은 4,881명이고, 이 가운데 70세 이상이 2,265명으로 46.4퍼센트나 차지하며 40세 미만은 불과 4명뿐이다. 1970년대 14,143명이던 제주해녀는 1980년대 7,804명, 2000년에는 5,789명으로 줄었다.
2012년 9월 14일 세계자연보전총회 회원총회 10차 세션 때, 제주형 의제 가운데 하나인 ‘발의안 108’ ‘독특한 해양 생태 지킴이 제주해녀의 지속가능성’을 공식의제로 채택했다. ‘발의안 108’은 멸종위기에 처한 해녀 공동체를 보전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주문하고, 전국에 있는 해녀들에 대한 실태조사와 독특한 해녀문화 가치를 조명하는 내용이다.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로 시선을 옮겨보자. 강정마을회는 2007년 4월 26일 긴급임시총회를 소집했다. 강정 해녀 40여 명을 포함해 87명이 참여했고 ‘강정해군기지 유치’를 만장일치 박수로 결의했다. 대한민국 해군은 서귀포시 화순과 위미 1리, 위미 2리를 대상으로 제주해군기지 추진을 타진했으나 화순과 위미 해녀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히면서 좌절했다. ‘해녀를 매수하라’, 반복학습을 통한 지혜를 실천했고 마침내 강정 어촌계와 해녀들을 매수하는 데 성공했다.


사진 이명익

‘평화와 안보’가 선택한 강정마을

이후 강정마을 주민들은 제주해군기지 찬성 측과 반대 측으로 갈라섰다. 2007년 5월 17일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주민들은 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회를 구성해 6월 19일 임시총회를 열었지만, 찬성 측 주민들과 강정 해녀들이 앞장서 기표소를 파괴하고 투표함과 투표용지를 탈취하면서 회의는 무산되었다. 난항 끝에 해군기지 강정 유치를 이끌었던 전 마을회장은 해임되고, 강정마을회는 2007년 8월 20일 전체 주민투표를 실시해 주민 725명 참가해 반대 680명, 찬성 36명 무효 9표로 해군기지 강정유치 반대입장을 마을회의 이름으로 결정했다.
강정해안가는 애초 해군기지 후보군에도 없던 곳이었다. 제주해군기지추진사업단은 2007년 3월 말까지 화순과 위미 1리, 위미 2리 말고는 다른 후보지가 없다고 밝혔고, 김태환 전 도지사도 2007년 4월 10일 도의회에서 다른 후보지를 검토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2007년 4월 26일 강정마을긴급임시총회를 분기점으로 김태환 전 도지사는 도내 여론수렴 결과를 근거로 국방부에 강정마을을 제주해군기지 최우선 후보지로 건의하고 국방부는 6월 8일 ‘평화와 안보’를 위한 해군기지 건설예정지로 강정마을을 확정해 통보하기에 이르렀다.
대한민국 해군은 2009년 2월 ‘기본계획보고서’에서 강정해군기지 입지타당성 평가를 다음과 같이 공개했다. 화순, 위미, 토산, 강정 등 8개 마을을 대상으로 항만입지, 배후지 여건, 문화재 현황, 어업권 현황 등 4가지 항목(각 1점씩)을 평가한 결과, 강정 9점, 화순·위미·토산·월평 8점으로 강정마을 해군기지 입지타당성을 최종 확정했으며,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선정한 입지이므로 (사전환경성검토서에) 입지타당성을 대안항목으로 미선정”했다는 것이다.

강정앞바다는 2000년 뒤로 7개의 보호지역으로 지정, 보전되고 있었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2002.12), 천연기념물 제421호 문섬·범섬천연보호구역(2000.7), 천연기념물 제442호 제주연안연산호군락(2004.12), 해양수산부 지정 생태계보전지역(2002.11.5), 제주도 지정 제주도해양도립공원(2006.10), 제주도 지정 절대보전지역(2004.10.27), 해양수산부 지정 절대보전연안지역(2007.4) 이다. 강정마을에 흐르는 강정천과 악근천 두 개의 하천에는 해마다 4월경부터 은어가 회귀하고, 강정앞바다 구럼비 바위 1.3킬로미터 앞에는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 핵심지역인 범섬이 있다. 또한 구럼비와 범섬 사이엔 73,800제곱미터 규모의 국내 최대의 산호군락인 ‘산호정원’이 자리잡고 있다. 제주올레길 가운데 가장 경관이 뛰어나다는 7구간 외돌개～월평 길의 백미가 강정마을이다.
하지만 환경영향평가 동의안과 절대보전지역 해제안이 2009년 12월 도의회 한나라당 의원들의 날치기로 통과되고, 문화재청은 해군이 신청한 국가지정문화재 현상변경을 2009년 9월 조건부로 허가한다. 한편 국방부장관은 2009년 1월 국방·군사시설 실시계획을 승인했는데, 이는 환경영향평가 초안이 공람(2009년 4월)되고 ‘제주해군기지(민군복합형관광미항) 건설사업 환경영향평가서(보완)’를 제출(2009년 8월)하기 전의 일이다. 위는 모두 위법이거나 혹은 사후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사실들이다.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공사장에서 발견된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야생동식물 2급인 맹꽁이와 붉은발말똥게 그리고 제주고유종인 민물새우 제주새뱅이는 모두 제주해군기지 사전환경성검토에서 누락된 종이다. 사전환경성검토 부실 논란이 일자 대한민국 해군은 2010년 10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붉은발말똥게 총 303개체를 포획, 서귀포 약천사 선궷네에 이식”, “맹꽁이 유생 총 900여 개체를 제주시 돌문화공원에 이식”, “사업부지내 용천수에서 발견된 제주새뱅이도 총 5,300여 개체를 강정천에 이식”했다고 밝힌다. 그러나 포획, 이식과정 모두 졸속이었다.
붉은발말똥게는 포획과정에서 포획틀에 갖혀 죽은 개체가 발견되었고, 이식 장소로 언급된 선궷네는 개인 사유지로 이식 이후에 경작지 조성을 위해 훼손되었다. 맹꽁이는 올챙이 상태의 유생만 이식에 성공했는데, 이것은 맹꽁이 생태주기의 90퍼센트 넘게 차지하는 육상서식지에 대한 조사와 포획이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식 장소로 언급된 제주 돌문화공원은 맹꽁이의 기존 서식지로 밝혀진 곳도 아니었다. 5,300마리의 제주새뱅이가 이식된 강정천 하류 800미터 지역은 한 생태계에서 개체군이 증가할 수 있는 최대치를 넘어선 방사였다. 대한민국 해군은 멸종위기종 포획·이주 역사상 기록에 남을 ‘맹꽁이 이식성공율 0퍼센트’를 남긴다.
2012년 8월 녹색연합, 그린피스 동아시아지부, 민주통합당 장하나 의원, ‘Savejejunow’는 대한민국 해군이 실시한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독립적 환경영향평가를 검토한다. 핵심 이슈는 제주해군기지 건설로 인한 연산호 군락의 훼손가능성이었다. ‘독립적 환경영향평가’ 조사팀은 해군기지 예정지의 서측방파제와 불과 100미터 떨어진 강정등대 주변에서 법적 보호종 8종, 동측방파제와 500미터 떨어진 서건도 주변에서 법적 보호종 5종을 발견했고, 대한민국 해군도 환경영향평가 당시 강정등대 외곽 3지점에서 법정 보호종 7종을 발견했지만, 서건도 일대는 조사 지점에서 일부러 누락시켰고 공사 지점 안쪽은 공동생태조사단의 ‘추가 조사’ 요청을 무시한 채 ‘연산호 군락 없음’으로 단정 지었다.

2012년 9월 6일 시작된 세계자연보전총회의 핫 이슈는 단연 ‘제주해군기지 환경파괴 쟁점’이었다. 세계자연보전연맹 공식 회원단체인 미국의 ‘인간과 자연의 모임(Center for Human and Nature, USA)’은 제주해군기지 환경영향평가 재검토, 강정마을 생태·문화 등 훼손지역 복원 등에 관한 ‘긴급발의안 181’(Protection of the People, Nature, Culture and Heritage of Gangjeong Village)을 제출했다. 캐나다, 에콰도르, 아르헨티나, 이란, 코스타리카, 필리핀, 브라질, 방글라데시, 페루, 이탈리아, 파라과이, 일본, 네델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세계자연보전연맹 회원단체 34곳이 공동 스폰서로 발의안을 지지했다. 영화배우이자 환경운동가인 로버트 레드포드도 세계자연보전연맹 사무국에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부당성을 알리는 서한을 발송했다.
강정마을에 관한 ‘발의안 181’은 3차례 컨택 그룹 회의를 거쳐 9월 15일 총회 마지막 날 회원투표에 부쳤다. 찬성 269표, 반대 120표, 기권 128표로 비정부기구 회원단체 투표에서 과반수 넘는 지지를 얻었지만, 정부기구 회원단체 투표에서 찬성 20표, 반대 68표, 기권 60표로 과반수에 못 미쳐 결국 ‘발의안 181’은 부결되고 말았다.
대한민국 해군은 총회 기간 내내 제주해군기지 문제는 ‘국가 안보에 관한 불가침의 영역’이라며 배수진을 쳤다. 한국 정부는 총회 기간 중 강정마을에 관심 있는 미국, 일본, 나이지리아 국적의 9명에 대한 입국을 거부하기까지 했다. 세계자연보전연맹 사무국은 2012년 4월 25일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타당하다고 믿는다”는 입장문을 발표하고, 강정마을회의 총회장 내 부스신청도 불허하면서 한국 정부의 손을 들었다. 반면 나라안팎 여러 총회 참가자들은 ‘토착 원주민의 환경권과 평화권, 멸종위기종 보호’는 세계자연보전연맹의 존립 근거라며 강정 주민들의 행동을 지지했다. ‘발의안 181’은 통과되지 못했지만, 세계자연보전총회를 통해 제주해군기지 문제는 세계에 알려졌고, 강정마을은 앞으로 이어갈 강력한 지지 세력을 얻게 되었다.

국제 환경잔치인 세계자연보전총회는 9월 15일 ‘제주 선언문’을 채택하면서 열흘 동안 일정을 갈무리했다. “지구의 생물 다양성과 생물권이 더욱 황폐화되는 것을 막을 윤리적 책임과 기회가 있으며, 우리는 이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다.”(제주 선언문) 하지만 강정마을의 부당한 현실을 경험한 이들이 요청하는 것은 ‘제주 선언문’의 공허한 문장이 아니라, 제주해군기지 문제해결을 위한 한국 정부의 민주 절차에 따르는 평화적인 노력이다.



윤상훈 님은 바다가 부르는 소리에 이끌려 환경운동에 발을 내디뎠다. 미학을 공부한 그이는 사람냄새 나며 가슴에 와 닿는 따듯한 녹색운동을 꿈꾸며 녹색연합 대화협력실 정책팀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