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여섯 명의 여자들이 그레를 등에 메고 갯길을 따라 민가사섬으로 향했다. 한 주민이 갯골에 그물을 놓아 물길을 따라 도는 숭어를 잡고 있었다. 펄에서 열심히 식사를 하던 칠게들이 마도요의 출현에 혼비백산 구멍으로 숨었다.

하지만 이제 어민들을 포함한 뭍생명들이 뛰놀던 갯벌은 뭍으로 변했다. 칠게가 살던 갯골은 자동차가 드나드는 길이 되었다. 그레를 들고 백합을 캐던 여자들은 날품을 팔러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마을을 떠난 사람도 있다. 도요새들도 뒤따라 사라져버렸고, 마을공동체도 갯벌공동체도 모두 무너졌다. 누가 새만금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정치인일까. 개발론자 탓일까. 토건업자 때문일까.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될 무렵 내 안에 숨어 있는 ‘육지것’을 발견했다. 갯벌은 쓸모없는 땅이라는 ‘오해’와 갯일은 천한 것이라는 ‘편견’이었다. 어민들 가운데도 ‘육지것’들이 많다.

20여 년 전이다. 갯벌 위에 대나무를 박고 김농사를 짓는 것을 보았다. 충격이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갯벌을 바지락밭이라 부르고, 심지어 육지의 논과 밭처럼 나누어서 갯벌을 오가며 관리하기도 했다. 미역이 잘 붙게 겨울철에는 갯바위를 닦고, 여름철에는 해초가 마르지 않도록 물을 주기도 했다. 산골에서 자란 탓에 갯것은 까막눈이었던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학교교육을 잘 받아 갯벌은 ‘쓸모없는 땅’이라 굳게 믿었다. 그러다 ‘물때’를 익히고, 갯바람이 익숙해질 무렵 어촌에서 갯벌은 논밭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

갯벌은 어민은 물론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공공재다. 한정된 자원을 마을사람들이 똑같이 나누고, 지속가능한 어장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는가. 그 과정에 생태철학과 분배정의가 오롯이 담겨 있다. 그래서 갯벌은 자연이 아니라 문화다. 만들어진 환경이다. 공유재의 비극이 될 수도 있지만 어촌과 어민의 사회 안전판이 되기도 한다. 호미 하나로 평생을 자식 기르고 늙은 뒤에도 기댈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갯벌을 쏘다니며 오래된 미래를 찾는 것도 이것 때문이다.

- 글 사진 김준

김준 님은 요즘 작은 섬에 푹 빠져있다. 평생 바다와 갯벌에 기대어 살다 늙은 노인에게 삶의 지혜를 배우고 있다. 섬은 학교이며, 섬사람은 스승이라는 믿음으로 섬 여행을 즐긴다. 쓴 책으로는 <김준의 갯벌이야기>, <대한민국 갯벌문화사전>이 있으며 최근 <바다맛기행>을 냈다. 사람 사는 섬을 모두 걷겠다는 발원을 세우고 ‘섬의 인문학’을 지향하며 <섬문화답사기>를 쓰고 있다.

* 이 기사는 2013년 6월호 특집 기사 일부를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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