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미국 땅에 발을 내딛던 날의 공기의 온도, 공기의 향기 모두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스스로 가겠다고, 가고 싶다고 씩씩하게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스무 살의 그 당찬 모습까지도 생생합니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곳이지만 막상 모든 것이 처음이다 보니 그 설렘 뒤에는 한편으로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진 낯선 땅에서의 생활이라 더 그랬나봅니다.
영어로 강의를 듣는 것이 어찌나 어렵던지…. 늘 녹음을 해서 듣고 또 들으며 강의 속도를 맞춰갔습니다. 늘 교수님의 오피스 타임에 찾아뵙고,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한두 시간씩은 여쭤보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교수님이 “유정, 네가 다음 학기에 없으면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 심심해서 어떡하니?”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런 학생은 처음 본다는 교수님과 함께 큰 소리로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나하나 떠올려보면, 미국유학을 포기하고 돌아오고 싶었던 기억, 혼자서 너무 아파 서럽게 울었던 기억, 부모님과 함께 전화 통화를 하며 펑펑 울던 기억까지, 그동안 힘든 기억들이 참 많이도 있었습니다. 결국 대학생활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찾아드는 기억들은 무언가 ‘처음’ 해봤던, 들어봤던 일입니다.
처음 영어 울렁증을 극복하기 전에는 외국인과 눈을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눈만 마주쳤다 하면 말을 걸어오는 문화적 차이에 혹시라도 말을 당황할까봐 마음 졸이며 다녔었죠. 못하더라도 처음부터 당당하게 말을 했다면 친구들도 더 빨리 사귀고 그쪽 문화에 빨리 적응해서 덜 힘들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했던 수많은 경험들, 처음 들었었던 말, 처음이라는 모든 것들은 여전히 뇌리에서 잊히지 않고 남아있습니다. 당연히 첫 입사날도 기억납니다. 입사 첫날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처음으로 여러 가지 알 수 없는 만감이 교차하여 서럽게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간과해온 아버지의 마음을, 아버지의 생활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물론 만분의 일도 채 몰랐겠지만 사회 초년생의 입사 첫 날, 첫 회식에서의 그 느낌은 아버지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닿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훌륭함, 대단함에 경외심이 들었던 거죠.
물론 아버지와 제가 같은 직종도 같은 위치도 아니지만, 이런 사회생활을 겪으시면서 우리가족을 위해 애쓰신 노고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갑자기 가슴이 아려오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제가 아버지께 너무 죄송스러워서…. 그 전까지는 어림짐작으로만 아버지의 노고를 생각했다면, 부모님 품에서 벗어나 처음 겪는 사회생활 속에서 많은 것들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아버지께 이런 말씀을 드리면 그저 허허 웃으시지만, 그 웃음 안에는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음을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어렸을 때는 그 웃음이 그저 아버지의 웃음소리라고 밖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철부지 장녀가 비로소 그때서야 깨달았으니 참으로 죄송스러웠습니다. 

저는 요즘에도 지나온 ‘첫 순간들’을 떠올려 봅니다. 너무 힘이 들 때 그 순간들을 떠올리면 큰 힘이 되니까요. 특히 무언가를 처음 시작해야할 때 첫 순간들을 떠올리면 슈퍼파워를 얻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아직도 ‘처음’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하고 싶은 일들도 많고요. 기대감만큼 긴장되기도 하지만, 늘 그래왔듯, 이 모든 첫 순간들이 저에게는 도움이 될 거라 가슴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먼 훗날, 늘 그렇듯 그 처음의 순간들이 즐겁고 유쾌하며 깨달음이 함께 남는 그런 순간들이 될 거라 믿습니다. 
내일의 나를 상상하며 다시 한 번 열심히 첫 도전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도전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면서 부모님 인생에서 처음으로 제가 자동차도 바꿔드리고 싶은 소망도 생겼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려주실 어머니 아버지. 늘 저의 ‘처음’에 용기를 주시는 그림자와 같은 두 분을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