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외가쪽 식구 대부분은 피아노를 전공하셨고, 어머니도 60세가 넘도록 피아노를 가르치셨다. 때문에 어린 시절에는 피아노 소리에 눈을 뜨고 피아노 소리와 함께 잠이 들곤 했다. 음악과 피아노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형제’였던 셈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레 네다섯 살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악상을 떠올리며 연주곡을 만들게 되었다. 8살이 되던 해, 너무나 예쁜 여동생이 태어났는데, 그 벅찬 기쁨을 표현하고 싶어 난생 처음으로 <귀여운 내 동생>이라는 제목에 가사를 붙여 곡을 만들기도 했다.
학창시절의 나는 더블데크로 20여개의 데모 테잎을 만들어 300여곡의 습작을 완성시키며 음악활동을 계속 이어갔다. 음악과 피아노, 그리고 작곡활동은 걸음마다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와 같았다. 사실 그렇게 되기까지 나의 작곡활동에 큰 전환점이 된 인연이 있다. 듣기만 해도 가슴 떨리는 이름, 전설적인 밴드, ‘비틀즈’이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아버지로부터 비틀즈의 테잎을 선물 받기 전까지 내가 만든 곡은 주로 연주곡이나 동요 위주의 음악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날아든 새 한 마리.
“Blackbird singing in the dead of night, Take these broken wings and learn to fly, All your life, You were only waiting for this moment to arise.” (Beatles, ‘Blackbird’)
이 곡을 처음 듣는 순간, 뭔가로 머리를 맞은 듯 황홀경에 빠졌고, 늘 접하던 클래식곡과는 다른 신세계를 접한 기분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는, 자유로우면서도 정제된 형식들이 곳곳에 녹아있는 그런 곡이었다. 당시에는 비틀즈의 정규음반이 국내 라이선스 체결을 맺기 전이라 히트곡 모음집 형식의 테잎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그들의 정규 LP를 구입해서 제대로 수집하기 전까지는 앨범별로 투영된 비틀즈의 소울을 속속들이 느낄 순 없었다. 하지만 워크맨의 오토리버스 기능 덕에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반복해 들으며 팝의 형식을 배울 수 있었고, 멜로디 진행에 대한 공부 역시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말 그대로 비틀즈는 나에게 있어서 팝음악의 교과서였고, 최고의 선생님이 되어 주었다.
비틀즈가 아니었다면 이후 내 정신세계를 뒤흔든 레드제플린과 핑크플로이드, 딥퍼플, 너바나 등, 수많은 락그룹과의 자연스러운 조우와 팝에서 락, 재즈, 블루스, 싸이키델릭, 댄스뮤직에 이르는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의 포용력을 기르는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비틀즈 음악 안에는 현대음악에서의 수많은 음악적 표현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녹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최근 가장 많이 듣는 음악이 비틀즈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손가락을 풀기 위해 바흐의 인벤션을 연주하듯 음악적 활력이 필요한 순간, 내 아이들에게 팝을 알려주기 위한 좋은 교재가 된다. 뿐만 아니라 복잡한 편곡주법과 코드진행에 지쳐있을 때 편안한 휴식처이자 정돈된 본보기로서 늘 함께한다.

세상을 뜨고 난 이후에도 존 레논의 평화와 사랑을 향한 정신과 음악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에 남아있고, 또 다른 멤버인 폴 메카트니는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지난 해 열린 내한공연과 지난 달 미국에서 열린 ‘Desert Trip’을 직접 관람할 기회가 생겼다. 3시간 반의 공연시간 동안 그는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피아노와 기타, 베이스기타를 두루두루 연주하며 종횡무진 했다. 그 모습은 데뷔 25년차 후배 뮤지션인 나에게 또 한 번의 커다란 울림과 가르침을 주기에 충분했다.
공연 후 돌아오던 길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의 부족함을 위해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채찍질과 더불어 아직 걸어가야 할 음악의 길이 한참 더 남았다는 희망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늘 하던 작업 속에서 언제나 ‘익숙해 지지 않기’를 다짐하게 만드는 ‘비틀즈’라는 존재, 그들과의 만남은 여전히 꾸준한 노력과 도전을 멈추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누군가에게도 나의 음악이 그런 만남, 소중한 인연이 돼주기를 꿈꾸며 나는 오늘도 비틀즈의 음악을 플레이한다. 그것은 나에게 또 다른 감동을 주고, 새로운 영감 속으로 데려갈 것이다.

*1972년 서울 출생. 경희대 포스트모던 음악학과 졸업. SBS 최고 작곡가상 수상(1996~7). ‘최근 10년 넘버원 최다 히트
작곡가’로 선정(2000), 김범수 ‘보고싶다’, 이은미 ‘애인 있어요’ 젝스키스 ‘예감’, 터보 ‘회상’ 등 다수의 히트곡 및 뮤지컬 <서편제> 전곡 작·편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