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작년과 올해에 걸쳐 두 차례 해외를 다녀왔습니다.

관광업계가 정상화됐다고는 하지만 2년 남짓의 공백으로생긴 후유증이 여전히 남아 있더군요. 공항 출입국장을 채우던 식당과 상점, 편의 시설 일부가 문을 닫은 채로 비어 있거나 축소 운영되는 경우가 꽤 많았습니다. 면세점 역시 예전만큼의 쇼핑 열기를 찾아보기 힘들었고요. 그럼에도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곳이 있었는데, 바로 위스키 판매 코너였습니다. 분주하게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구매할 제품을 고르거나, 가족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주류 제품 구매 한도를 확인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죠. 이전에도 위스키가 인기 품목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의 위스키 열풍은 보증된 안전 자산을 향한 열망처럼 느껴집니다. 투자품으로 가치를 발휘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집의 재미를 안겨주는가 하면, 시간을 들여 탐닉하기에도 좋죠. 시계나 가구, 예술품 등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높지 않다는 점도 위스키의 매력입니다.

주류 시장의 범위 안에서 위스키를 들여다봐도 그 가치는 남다르게 느껴집니다. 특히 위스키는 브랜드적 면모가 가장 돋보이는 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작 공정이 복잡하고 까다로워 투자 비용이 큰 만큼 타 주류에 비해 전문성이 확보되고, 품질이 시간에 비례한다는 인식은 자연스레 희소성까지 만족시킵니다.

또 음식과의 페어링보다 단독으로 즐기기 좋은 성질 때문에 절대평가의 대상으로 알맞죠. 대중성을 확보하는 면에서는맥주나 와인이 뛰어날지 몰라도, 많은 브랜드의 궁극적 목표인 독보적인 가치를 인정받는 데는 위스키가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카치위스키의 고장인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메이커는 일종의 부족처럼 자리합니다. 100년이 넘는 혹은 100년에 가까운 전통을 지닌 메이커들은 각자 설화와 같은 스토리를 지니며, 그 스토리의 중심에는 수십 년 동안 위스키 제조에 몸담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B>가 소개하는 싱글몰트위스키 브랜드 발베니 The Balvenie 역시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 지역에서 1892년부터 가업을 이어왔습니다. 이들이 스코틀랜드 내 여러 ‘위스키 부족’ 중에서도 남다른 위상을 지닌 것은 위스키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실험 정신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완성도를 높여온 덕분입니다. 스카치위스키뿐 아니라 증류주업계에까지 영향을 미친 발베니 고유의 숙성 기법은 이러한 실험 정신을 통해 탄생하고 진화했습니다. 보리밭부터 병입까지, 위스키 제조 과정의 시작과 끝이 모두 인하우스에서 이루어지는 것 역시 전통의 수호보다는 R&D의 맥락에서 진행되는 일들입니다. 발베니가 말하는 실험 정신은 당장의 값어치를 인정받기 위한 전략과는 거리가 먼 셈이죠.

196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창고 어딘가에서 숙성되고 있는 위스키, 10년의 견습 기간을 거쳐 몰트 마스터의 자리에 오른 사람, 5년에 걸쳐 하나의 세트로 출시되는 특별 에디션까지. 발베니의 모든 것은

조바심 대신 인내심을 동력 삼아 돌아갑니다. 발베니의 전설적몰트 마스터인 데이비드 스튜어트는 60년 넘는 시간을 몰입해온 위스키의 숙성 과정을 여전히 “복잡하고 완전히 파악되지 않은 영역”이라고말합니다. 변화나 변수를 빠르게 제어하는 것이 비즈니스의 효율이라면 기다림을 통해 실수나 오류를 새로운 단서로 여기는 이들의 태도는 순수 학문을 닮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시간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여러 창작자의 고요하고 깊은 우주에 더욱 호기심이 생겨납니다. 

[출처] 매거진B (한글판) Magazine B, 매거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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