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발자국

영향력 있는 삶으로

윤수빈, 아나운서

“거짓말.” 5년 전의 저에게 지금의 제 모습을 말해 주면, 이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네가 공중파 아나운서 준비를 그만둬?’, ‘멀쩡한 집을 나와서?’, ‘뭐, 네 사업을 한다고?’ 돌아보면 무려 12년을 아나운서가 된 것처럼 살았으니까요.

저는 현재 스피치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며 약 5만 팔로워를 보유한 스피치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브랜드를 키워가는 과정은 곧 ‘첫발자국’이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합니다. ‘즐겁게 표현하면 브랜드가 됩니다.’ 저는 이 메시지와 함께 영향력을 전하는 것을 올해 목표로 세웠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5년 뒤의 제가 지금의 저에게 “나 지금 이렇게 살아”라고 알려주면, 전과는 달리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

초등학생 시절, 어느 날이었습니다. ‘꿈’을 위해 무언가를 처음으로 도전한 날, 엄마가 마트에 다녀오라며 주신 심부름비로 그동안 사고 싶었던 <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라는 책을 서점에서 구입했습니다. 엄마에게 혼날까 하는 마음에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던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그렇게 12년간 TV 속 아나운서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에서는 학내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하루도 방송국에 가지 않은 날이 없었고, 학원을 비롯한 주변 사람으로부터 “곧 합격하겠네”라는 말을 익숙히 들어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나운서 준비생 4년 차에 접어들었을 즈음, 내면에서 이런 질문이 솟아올랐습니다. ‘공중파 아나운서로 세상에 줄 수 있는 나만의 가치가 뭘까?’, ‘합격하면 과연 행복할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도무지 긍정적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질문을 회피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외면해왔던 불편함은 점점 저 자신을 짓누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만큼 많이 고통스러웠습니다. 꿈을 향해 무모하고 성실하게 달려온 시간, 학원비와 생활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던 시간들, 그 열정을 한순간에 내려놓는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득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 결국 답을 찾아냈습니다. ‘나는 다른 이야기를 근사하게 전할 때 행복을 느끼는 게 아니라, 내 이야기를 전할 때 행복을 느끼는구나.’ 아나운서 윤수빈으로서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닌, 윤수빈 그 자체로 의미를 찾는 여정을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물론 현재 저는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행사를 진행하는 과정도 충분히 즐기고 있습니다. 아나운서를 꿈꿨던 이유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길을 걸으며 저 자신을 정확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새로운 것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악수를 하려면 쥐고 있는 컵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말입니다.

그 당시 저를 괴롭혔던 생각은 ‘공중파 아나운서’라는 일의 끝이 너무도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보다 당장 나를 가슴 뛰게 해줄 수 있는 일을 찾는 과정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과정과는 다른 0의 영역일지라도. 꼭 큰 성과를 낸 분야만이 내려놓을 만한 무게를 지닌 것은 아닙니다. 오랜 기간 나의 대의(大義)라고 여겨온 일에 열정적으로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 혹은 과거에 대한 집착이 될 수도 있겠죠. 새로운 것에 자꾸만 몸의 방향이 이끌린다면 머무르고 있는 것이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짐을 챙겼던 시간은 영원히 자신에게 남아있다고. 행복과 성장을 택하고 싶다면 과감하게 힘을 주어 살포시 내려놓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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