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스토리] / 첫소리내기 / 헤르츠티어, 사진가

아날로그 스토리

첫소리 내기

헤르츠티어, 사진가·뮤지션

어릴 때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세상에 하고많은 말 중 하필 가장 발음하기 어려웠던 것은 내 이름이었다. 한학을 공부한 할아버지가 사흘 밤낮을 고민해서 지으셨다는데, 아무리 뜻이 좋다 한들 내게는 그렇게 고역일 수가 없었다. 말 안 듣는 조음기관을 타일러 이름을 말하기 위해서는 몇 번의 큰 숨이 필요했다. 속으로 박자를 세며 괜히 고개를 까딱까딱하거나 몸을 두드려대야 했다. 그게 말더듬이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회피 행동이란 건 나중에 알았다. 그 때문에 건방지다고 어른들에게 핀잔도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왔다.

생각하면 언제나 처음이 문제였다. 무슨 말을 할 때면 한순간 혀가 돌덩이처럼 무거워졌다. 내 언어는 바위 밑에 깔려 있었으므로 그 무게를 견디고 들어 올리는 게 첫 번째 순서였다. 그러고 나면 백 미터 달리기를 하고 난 듯 숨이 차올랐고, 입술은 자음과 모음을 머금은 채 문풍지처럼 떨렸다. 운 좋게 첫소리를 냈더라도 거기서부터 또다시 시작이었다. 음음, 어어, 쩝쩝 등의 불필요한 잡음이 아무렇게나 끼어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신중하게 말을 고르는 아이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상 나는 몸을 쥐어짜며 내 혀와 맹렬히 싸우는 중이었다. 더듬을 것 같은 말은 재빨리 다른 말로 바꿔가면서. 누구나 다 아는 단어를 굳이 발음하기 좋은 엉뚱한 말로 대체하면서.

한번은 쉬는 시간에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을 자세히 관찰한 적이 있다. 교실에 드리워진 봄날의 따스한 빛, 그리고 열린 창문으로 날아든 하얀 벚꽃 이파리. 조금은 몽환적인 그런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작고 부드러운 둥지 같은 아이들의 입속에서 노란 새가 포르르 날아오르는 걸 보았다. 교실에 날아다니는 새들이 떨어뜨린 깃털들이 눈앞을 간지럽혔다. 내 입속에서도 한 마리쯤 날아올랐으면…. 난생처음 외로움을 느꼈다.

나는 자타공인 말더듬이였지만 그렇다고 주눅 든 애는 아니었다. 평소 멀쩡하다가도 말만 하면 이상해지는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시선들에 익숙해지기도 했고, 좀 웃을지언정 그래도 말을 끝까지 들어주던 다정한 친구들 덕분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인기는 좀 있었다. ‘반에서 키 제일 크고 공부 잘하고 말 더듬는 온순한 애’로. 아이들 선거는 또래들 간의 인기투표 같은 것이어서 나는 부반장, 학급회장, 반장, 나중엔 어린이 회장으로도 뽑혔다. 그렇다고 내 상태가 특별히 달라진 건 아니었다. 한 마리 거미가 된 듯 몸을 두드려 언어를 뽑아내는 행동은 여전히 계속됐다.

어느 날 옆 반 선생님이 나를 불러 공책과 연필 한 자루를 주시며 말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떠오르면 글로 써보렴.”

국어 숙제를 하듯이 말고 사람들에게 정말 들려주고 싶은 네 이야기를 써보라고, 글 쓰다 보면 어느새 네가 말더듬는다는 사실도 잊게 될 거라고.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글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그래도 된다니. 발끝에 수백 개의 풍선을 매단 듯 자꾸 몸이 떠오르려고 했다. 그날 밤엔 너무 신나고 설레서 잠이 잘 안 왔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신비롭다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첫소리를 내기 전 숨부터 가빠졌던 내가 종이 위에서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느릿느릿 공책에 첫 문장이 쓰이기까지 연필은 차분하게 나와 호흡을 맞춰주었다. 한 달 만에 생애 첫 동화를 썼다. 외계인을 따라서 낯선 행성으로 날아간 소년의 모험을 그린 SF였다. 친구들은 내 공책을 돌려가며 재밌게 읽어주었고, 이듬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나는 공책과 원고지에 글을 썼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땐 나를 아는 사람들 모두가 내 장래희망이 뭔지 알았다.

누가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나는 말을 더듬었기 때문에 작가가 되었다고. 첫소리를 잘 내지 못하는 바람에 언어와 소통에 민감해졌고, 글을 쓰게 됐고, 이미지 언어, 음악 언어, 영상 언어 등을 구사하는 예술가가 되었다고. 편집자로 수백 권의 책을 만든 거기에도 나의 말더듬은 힘을 실어주었을 것이다. 처음이 얼마나 근심스럽고 곤란한 것인가를 나는 잘 안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고, 그것은 늘 첫소리, 첫 문장과의 겨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