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도 풀리고…만남은 소옹과 사마광처럼

김홍도. ‘취후간화도(醉後看花圖)’. 비단에 연한 색. 98.2×48.5㎝. 국립중앙박물관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었다. 2년1개월 만이다. 코로나19 시대의 상징 같은 금기령이 사라지니 비로소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몇 사람이든 원하는 시간에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다행이다. 코로나19 치하에서는 사람이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해야 했다. 이념이 다른 것도 아니고 국경선을 쳐 놓은 것도 아닌데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다. 만나자고 하기도 부담스럽고 만나자고 해도 주저되었으니 참 기막힌 시간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2년이란 시간이 결코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에 대해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고 의미를 설정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성찰하고 점검해볼 수 있었으니 비록 강제적이었지만 인생에서 꼭 한 번은 멈춰 서야 하는 휴식시간이었다. 휴식시간은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누릴 수 있는 법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살기에 바빠 무시되기 일쑤였다. 그렇게 일에 치여 ‘조금만 더’ 하는 사이에 어느덧 손가락을 움직일 힘조차 없을 정도로 ‘번아웃’되고 말았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코로나가 아니었더라도 한번쯤은 큰 탈이 났을지도 모른다. 우연찮게 생각지도 못한 긴 침잠의 시간을 보냈으니 이제는 새로운 자세로 일도 하고 사람도 만날 것이다. 다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시절이 도래했으니 오늘은 아름다운 만남의 장면을 소개하겠다.

김홍도의 ‘취후간화도’ 부분.

안락선생과 사마광의 만남

단출한 살림이다. 맨 앞에는 매화나무가 서 있고 그 아래에서 다동이가 차를 끓인다. 다동이 곁에는 찻상이 있고 찻상 위에는 찻잔과 화분이 보인다. 매화나무와 괴석 옆으로는 다동이를 감싸듯 나무 울타리가 쳐져 있다. 무릎을 꿇고 앉아 진지하게 화로 안의 불씨를 살리는 다동이의 모습이 참 예쁘다. 이 장면만으로도 훌륭한 그림이 될 것 같다. 그렇게 감탄하면서 눈을 들어 보니 하얗게 핀 매화꽃 옆으로 초옥 안의 인물이 보인다. 커튼 아래 서안을 마주하고 앉은 두 사람의 모습이 사각의 문을 통해 시원하게 드러난다. 마치 현대적인 카페의 통유리를 보는 듯하다. 방안에는 두루마리와 책과 술병이 있다. 초옥 뒤로는 대나무와 두 마리 학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대나무는 앞쪽은 분명하게, 뒤쪽은 흐릿하게 그렸다. 매화나무도 대나무도 운치 있게 참 잘 그렸다. 오른쪽 위에는 ‘취후간화(醉後看花)’라는 제목과 함께 ‘단원(檀園)’이라 적혀 있다. 이 작품은 단원 김홍도(金弘道)의 ‘취후간화도’이다.

얼핏 보면 매화꽃이 핀 날 두 선비가 만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장면을 그린 작품 같다. 충분히 그렇게 판단할 수도 있다. 그림 속에 특별히 드라마틱한 내용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그림을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선비와 학과 매화를 보고 북송의 임포(林逋)를 그린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임포는 항주의 고산(孤山)에서 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자식 삼아 유유자적하게 살았던 매처학자(梅妻鶴子)다. 이 두 가지 견해는 결코 틀리다고 할 수 없다. 만약 ‘취후간화’라는 제목만 없었다면 말이다. 사실 유옥경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홍도 ‘취후간화도’의 재검토’(2019)라는 논문이 발표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 작품은 임포의 고사인물도로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유옥경은 그림을 치밀하게 분석한 결과 그림 속 주인공이 임포가 아니라 소옹(邵雍·1011~1077)이며 마주 앉은 사람은 사마광(司馬光·1019~1086)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런 연구가 가능했던 이유는 전적으로 김홍도라는 천재화가에 대한 무한한 신뢰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홍도라면 사소한 것 하나라도 허투루 그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옹과 사마광은 송조육현(宋朝六賢)으로 성리학의 대가들이다. 먼저 소옹을 살펴보자. 소옹은 자가 요부(堯夫), 호는 안락선생(安樂先生), 시호는 강절(康節)이다. 그래서 소옹보다는 소요부, 소강절 또는 안락선생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소옹은 집안형편이 어려워 인생 후반기에 낙양(洛陽)에 정착했을 때는 가끔씩 쌀독이 비어 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거처를 안락와(安樂窩)라고 이름 짓고 스스로를 안락선생이라 부르며 청빈을 누렸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맑은 창가에서 향을 사르며 성현의 책을 읽었고, 문득 흥이 일면 시를 지어 읊었다. 안락와는 소옹의 안빈낙도의 삶이 투영된 장소다. 안락은 편안함과 즐거움이다. 그의 안락함의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편안함은 정사가 태평한 것보다 더 편안한 것이 없고, 즐거움은 매년 풍년인 것보다 더 즐거운 것이 없다”고 했다. 태평한 정치와 백성들의 편안함이 그의 안락함의 바탕이었다.

소옹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안락와에서 은거하며 천지만물의 이치를 관조하고 우주를 포괄하는 철학을 완성시킨다. 그 철학이 선천역학(先天易學)이다. 선천역학은 수리(數理)를 이용해 미래를 예견하기 때문에 선천상수학(先天象數學)이라고도 부른다. 선천상수학은 관물(觀物), 즉 사물을 관찰한 결과에서 나오게 되었다. 관물은 무엇일까. 어느 날 소옹이 매화나무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때 참새들이 날아와 서로 가지를 다투다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소옹은 그날의 연원일시를 수로 뽑아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했다. 이것이 ‘매화역수(梅花易數)’다. 매화역수는 매화점이다. 매화를 관물하다가 그것이 계기가 되어 점을 쳤으니 매화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림의 제목으로 쓴 ‘취후간화’는 무슨 뜻일까. 이것은 소옹이 “좋은 술은 취하도록 마시지 말고, 좋은 꽃은 반쯤 피었을 때 보라(美酒飮敎微醉後好花看到半開時)”라고 적은 문장에서 가져온 제목이다. 말하자면 취후간화는 만물이 왕성해지면 곧바로 쇠약해지는 이치를 설명한 것이다. 일찍이 황정자가 ‘노랫가락 차차차’에서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고 애달파하며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로 열창했던 바로 그 의미다. 그러니 왕이나 위정자는 이런 이치를 유념해서 잘나간다고 오만하지 말고 어렵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저 삼가고 또 삼가야 한다.

김홍도의 ‘취후간화도’는 소옹이 안락와에서 사물을 관조하고 안빈낙도를 실천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림 속의 매화는 ‘매화역수’를, 학은 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덕과 재능을 겸비한 학명지사(鶴鳴之士)의 풍모를, 대나무는 그의 곧은 절개를 상징한다. 소옹은 평소 머리에 두건을 쓰고 어깨에 불자를 걸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왼쪽에 앉은 사람이 소옹이고 오른쪽에 앉은 사람이 사마광일 것이다. 사마광은 소옹을 형처럼 섬겼고, 안락와도 사마광이 마련해주었다. 사람들은 두 사람의 순정한 덕을 높이 평가했다. 소옹이 사마광과 만나기로 약속해놓고 꽃 구경을 가느라 약속을 잊은 적이 있었다. 그때 사마광은 화를 내는 대신 ‘꽃 밖에서 작은 수레는 아직도 오지 않네(花外小車猶未來)’라는 문장이 들어간 시를 지었다. 그 시는 ‘화외소거(花外小車)’라는 제목으로 화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소옹과 사마광은 송조육현으로 칭송받는다. 송조육현은 두 사람 외에도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 명도(明道) 정호(程顥), 이천(伊川) 정이(程頤), 횡거(橫渠) 장재(張載) 등이 포함된다. 육현 중에서 사마광 대신 회암(晦庵) 주희(朱熹)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들 육현의 에피소드가 여러 작가들에 의해 그려졌다. 이를 테면 주돈이는 ‘염계애련(濂溪愛蓮)’이란 제목으로 연꽃을 감상하는 모습을, 정호는 그가 지은 시 ‘춘일우성(春日偶成)’의 한 구절인 ‘방화수류(訪花隨柳)’라는 제목으로 그려졌다. 정이는 ‘부강풍도(涪江風濤)’라는 제목으로 사천성 부주로 귀양가는 사건을, ‘정문입설(程門入雪)’에서는 그의 제자인 양시(楊時)와 유초(游酢)가 스승을 공경하는 모습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평소 파초를 좋아한 장재는 ‘횡거관초도(橫渠觀櫵圖)’로 그려졌다. 그렇다면 사마광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을까.

진재해 ‘독락원도(獨樂園圖)’의 사마광.

혼자 있을 때 독락하며 자족하기

사마광은 편년체 역사책인 ‘자치통감(資治通鑑)’의 저자다. ‘자치통감’은 사마천의 ‘사기’와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역사책으로 주나라 때부터 송나라 건국 직전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중국의 역대 황제들은 ‘자치통감’을 치세의 자료로 활용하였고 조선의 왕들은 제왕학의 교재로, 문사들은 국정을 이해하는 필독서로 삼았다. 그런데 ‘자치통감’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코로나19보다 더 독한 사마광의 쓰라린 아픔이 있었다. 그가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에 반대하다 정치에서 물러난 사건이었다. 그 후 사마광은 독락원(獨樂園)이라는 정원을 만들어 은거하며 19년 동안 ‘자치통감’의 저술에 매달렸다. 그는 독락원에 독서당을 짓고 5000여권의 책을 소장해놓은 채 한가롭게 책을 읽거나 거닐었다. 그가 쓴 ‘독락원기(獨樂園記)’에는 “책을 읽다가 지칠 때면 낚싯대를 들고 나가 물고기를 잡거나, 옷자락을 걷어붙이고 약초를 캐기도 하고, 텃밭에 물을 대고 꽃에 물 주고, 대나무를 다듬기 위해 도끼를 갈고, 먼 산을 바라보며 한없는 기쁨을 누린다”고 적혀 있다. 사마광은 정권에서 소외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분노와 회한으로 밤을 새우는 대신 은일자의 즐거움을 누리며 저술에 매달린 것이다. 머리에는 복건을 쓰고 심의(深衣)를 입은 채 독락원을 거니는 사마광의 모습은 수없이 많은 화가들의 소재로 다루어졌다. 송조육현 중 사마광의 에피소드는 ‘독락원도’였다.

두 사람이 만난 장면을 그린 ‘취후간화도’를 보면 좋은 만남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좋은 만남은 각자 혼자 있을 때 자신만의 공간에서 독락하며 자족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었으니 여기저기서 그런 좋은 만남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