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시작한 애플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애플뮤직은 내부 에디터가 직접 큐레이팅한 플레이리스트와 음악 신의 유명 DJ를 내세운 라디오 스테이션을 통해 음악이 범람하는 디지털 시대에 양질의 음악을 접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 또한 독점 스트리밍 계약, 뮤직비디오 제작 투자 등 아티스트와의 유기적 관계를 강화하는 전략으로 상호 간 시너지를 극대화하며 음악 산업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창립자 스티브 잡스와 음악

애플의 CEO인 팀 쿡은 2015년 열린 WWDC(세계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애플뮤직을 공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음악은 우리 삶의 일부고, 애플에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애플을 얘기할 때 스티브 잡스를 빼놓을 수 없는 것처럼 스티브 잡스를 얘기할 때 음악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음악은 스티브 잡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으며,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예술가가 되기를 원했고, 애플 제품은 예술의 결과물이기를 원했다. 브렌트 슐렌더 Brent Schlender가 쓴 ‹스티브 잡스 되기›라는 책을 보면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사업 롤모델이 IBM이나 소니 Sony 같은 전자 회사가 아니라, 비틀스와 밥 딜런이라 밝히기도 했다. 그는 경자라기보다 마케터고, 혁신가라기보다 예술가에 가까웠다. 그런 감성은 디자인으로도 이어졌다. 스티브 잡스는 엔지니어링의 경이로움 이전에 감과 감정을 중요시했고, 감성적이고 직관적이며 예술적인 디자인을 원했다. 그의 막무가내식 고집은 결국 디터 람스 Dieter Rams로 대표되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라는 독일식 기능주의와 이성주의적 디자인 시대를 끝내고, 하르트무트 에슬링거 Hartmut Esslinger, 조너선 아이브 Jonathan Ive와 함께 ‘형태는 감정을 따른다(form follows emotion)’라는 감성주의 디자인 시대를 열었다. 애플 제품은 패키지와 손에 잡히는 감촉, 아무도 보지 않는 뒷면과 기판까지 예술적으로 디자인했다. 애플이 예술이 되기를 원한 흔적은 제품 발표회에서도 찾을 수 있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을 선보이는 자리를 마치 콘서트장처럼 만들었다. 소비자는 관객이 됐고, 스티브 잡스는 커튼콜이라는 콘서트장의 한 요소를 제품 발표회에 도입했는데, ‘한 가지 더 (one more thing)’로 불리는 세션은 제품 발표회의 하이라이트가 됐다. 그 마지막은 언제나 뮤지션의 몫이었다. U2, 토니 베넷 Tony Bennett, 존 메이어 John Mayer, 콜드플레이 Coldplay, 노라 존스 Norah Jones 등 슈퍼스타들은 한 제조사의 신제품 발표회라는 상업적 무대에 기꺼이 나와주었다. 아마 애플이 제품이 아닌 문화를 만들고, 현상을 주도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팟과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로 구축한 음악 생태계

1990년대 말부터 서서히 음악 산업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음악의 디지털화다. 음악을 사랑하던 스티브 잡스가 복귀한 이후 애플 역시 이 시류에 합류했다. 애플은 MP3 플레이어 프로그램인 사운드잽 MP3를 인수했고, 수개월간 개량을 거쳐 2001년 1월, 아이튠즈라는 서비스를 공개했다. 아이튠즈 프로그램은 컴퓨터에 들어 있는 음원을 모아서 컴퓨터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사운드 소프트웨어다. 그러나 애플 기준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기는 마땅한 것이 없었다. 애플은 엔지니어의 관점이 아니라 음악 마니아의 관점에서 기기를 다시 생각했다. 2001년 2월부터 개발에 들어간 애플은 8개월 만인 그해 11월에 아이팟을 선보였다. 아이팟은 2003년을 기점으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컴퓨터 사업부의 매출을 넘어설 정도다. 그러나 애플은 아이팟이라는 하드웨어로만 이 게임을 끝낼 생각이 없었다. 애플은 소프트웨어로 하드웨어를 새롭게 하고, 콘텐츠로 하드웨어의 경험을 확장하는 방법을 잘 아는 회사다.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는 그야말로 대히트를 쳤다. 1년 만에 8500만 곡이 팔렸으며, 다운로드 시장의 70%에 이르는 점유율을 차지했다. 아티스트를 존중하던 애플은 음원 수익의 70%를 저작권자에게 돌려줬다. 그러자 음반사와 아티스트의 시선도 달라졌다. 30%의 유통 수익만 떼가며, CD도 찍어낼 필요가 없으니 오히려 음원 관리는 편리해졌다. 그러자 아티스트들이 나서서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는 미국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유럽과 일본에 진출했고, 모두 큰 성공을 거뒀다. 매력적인 하드웨어를 보급하고, 아이튠즈라는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만든 다음, 콘텐츠를 팔아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 애플은 이 성공 방식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스트리밍 시대의 도래와 애플뮤직

2011년 10월 5일을 일기로 숨을 거둔 스티브 잡스 대신 팀 쿡이 CEO 자리에 오른 2012년 9월 12일, 키노트에서 애플은 아이폰의 여섯 번째 버전인 아이폰 5를 발표했다. 아이폰 5는 애플 최초의 LTE 지원 스마트폰이다. LTE는 4세대 이동통신으로 Long Term Evolution의 약자다. 전송 속도가 기존 3G에 비해 수십 배나 빠르기 때문에 사용자는 음악을 다운로드할 필요 없이 스트리밍해서 들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음악 시장에도 일찌감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가 시작됐다. 스웨덴의 스포티파이 이외에도 알디오 Rdio, 판도라, 디저 등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가 즐비했다. 그중에서도 세계 1위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스포티파이다. 2008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스포티파이는 무료로 음악을 들을 수 있었고, 광고 수익으로 운하는 방식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무료라는 방식을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회사가 있었다. 비츠 일렉트로닉스다. 비츠 일렉트로닉스는 훗날 30억 달러(한화 약 3조원)에 애플에 인수됐고, 그들이 운하던 ‘비츠뮤직’은 애플뮤직의 모태가 됐다. 1년간의 개선 작업 끝에 2015년 6월 8일, 애플뮤직을 발표했다. 애플뮤직은 3000만 곡의 음원을 보유하고 세계 100여 개국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존중과 발견으로 이룬 애플뮤직의 철학

애플뮤직은 과연 어떤 서비스일까? 그 힌트는 애플뮤직 소개 동상에 등장한 트렌트 레즈너 Trent Reznor(록 그룹 나인 인치 네일스 Nine Inch Nails의 리더)가 언급한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존중과 발견’, 존중은 뮤지션과 음악, 그리고 예술에 대한 존중을 뜻할 것이다. 애플은 스트리밍 시대에도 여전히 유료 모델을 고집했고, 뮤지션에게 주는 저작권료도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뮤지션에게 돈을 더 지급하는 것도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뮤지션을 존중하는 방법 중 하나다. 또 하나는 발견이다. 애플뮤직은 접속하는 순간부터 3000만 곡이 넘는 방대한 데이터 속에 자신이 모르는 미지의 음악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자신의 취향 데이터를 입력하면 애플뮤직은 구독자에게 각종 플레이리스트와 앨범을 추천해준다. 애플뮤직에서 음악을 들으면 들을수록 추천 앨범과 추천 음악은 정교해지고, 우리가 듣지 못했지만 정말 좋아할 만한 음악을 추천해주기 시작한다. 아이폰, 맥북, 아이패드, 애플워치 등 애플 제품과의 연계성도 애플뮤직의 장점이다. 애플뮤직의 플레이리스트만 동기화하면 어느 제품으로도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매력적인 하드웨어와 기술에 맞춰 애플뮤직 또한 업그레이드된다는 사실이 이들의 앞날을 더 주목하게 만드는 이유다. 이제 애플을 어떤 회사라고 한마디로 규정짓는 것은 쉽지 않다. 애플뮤직은 애플이 벌이는 음악 산업의 새로운 축이기도 하지만, 애플 역사를 관통하는 한 가지 거대한 흐름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어쩌면 애플뮤직은 애플에게 숙명과도 같은 사업이었을지 모른다.애플은 자신들의 하드웨어가 예술이 되기를 원했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하드웨어가 콘텐츠를 즐기는 수단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콘텐츠를 존중해야 자신들의 하드웨어가 더 빛난다는 사실도 터득했다. 그래서 하드웨어를 만들 때 콘텐츠의 존중과 소비자의 합리적 가격을 항상 염두에 뒀다. 그들이 만든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와 애플뮤직은 그런 절충의 결과다.

[출처] 매거진B (한글판) Magazine B, 매거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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