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가 없어지는 사회

글 이주영

“어린이 여러분 만나서 반가워요. 1학년이 된 것을 축하합니다.”
“선생님, 우리는 어린이가 아니에요.”
“네? 왜 어린이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기는 어린이집이 아니고 초등학교잖아요. 그러니까 어린이가 아니에요.”
“하하하,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음, 학생이에요. 우린 어린이가 아니라 학생이에요.”
“그렇지요. 초등학교 학생이니까 학생이라고 불러도 되지요. 그런데 어린이라고 불러도 돼요. 어린이는 어린이집 어린이도, 유치원 어린이도, 초등학교 어린이도, 중학교 언니오빠들도 모두 어린이라고 불러도 돼요.”

‘방정환과 어린이해방운동’ 관련 강의를 들은 선생님 한 분이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맡으셨는데, 요즘은 초등학교 어린이들도 어린이라고 부르는 걸 싫어한다며 들려주신 이야기다. 중고등학교 학생은 아예 어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선 어린이와 함께 ‘어린이’라는 말도 천대를 받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는 어른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소유물이고, 유치하고 부족해서 어른들이 가르치는 대로만 해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사회 곳곳에서 어린이를 무시하고, 억압하고, 인형이나 로봇처럼 만들고 있다. 그러니 어린이들 스스로도 어린이로 취급받는 걸 싫어한다.

법적으로 어린이는 ‘18세 미만 아이들’이다. 아동복지법에서 아동을 18세 미만이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동(兒童)이라는 말은 ‘어린 아이’라는 한자말이다. 아동복지법 제6조(어린이날 및 어린이주간)에서도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보호의 정신을 높임으로써 이들을 옳고 아름답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나도록 하기 위하여 매년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하며, 5월 1일부터 5월 7일까지를 어린이주간으로 한다.’처럼 같은 법 안에서 아동과 어린이를 섞어 쓰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중고등학생도 어린이라고?’ 하면서 수긍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중고등학생은 청소년이라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소년은 말 그대로 청년과 소년을 합한 것으로, 1920년대 소년운동을 보면 지금 중고등학생들은 소년에 해당한다. 어린이라는 말은 다 알고 있듯 1923년 5월 1일, 제1회 어린이날을 선포하며 널리 쓰이기 시작한 말이다. 천도교 개벽사가 <어린이>라는 월간 잡지를 내면서 퍼져 나갔다. ‘어린이’라는 말을 적극 쓰자고 주장한 사람은 방정환이다. 방정환이 앞장 선 어린이해방운동에서 ‘어린이’라는 말을 어떤 의미로 썼는가는 당시 선언문을 보면 또렷하게 알 수 있다.

1.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인격적 대우를 허하게 하라.
1.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만 14세 이하의 그들에게 무상 또는 유상의 노동을 폐하게 하라.
1. 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한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

-『어린이 문화 운동사』 15쪽 -

어린이는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가 시혜하듯 보호만 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님을, 완전한 ‘한 사람’으로 대우 받아야 한다는 권리를 선언한 것이다. 이렇게 어린이, 곧 18세 미만 사람을 완전한 인격체이자 대우 받아야 할 권리 주체로 선언한 것은 세계 어린이 운동사에서도 가장 앞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일제는 어린이를 권리 주체가 아니라 보호 대상으로만 보는 정책을 강화했고 해방 뒤 우리나라 정책도 마찬가지였다. 1961년 아동복지법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어른들이 보호하고 가르쳐야 하는 대상으로 어린이를 인식하는 정책을 점점 더 강화시켜 왔다.

끝내 어린이를 아파트 방에서 기르는 강아지처럼 소리 내서 짖지 못하게 울대를 잘라버리고, 동물원에 갇힌 짐승처럼 손톱과 발톱을 다 깎아버리고, 양계장 닭처럼 닭장 안에 갇혀서 알 잘 낳는 암탉으로 사육하는 가축 신세로 만들고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다는 사탕발림으로 점점 더 견고한 감옥에 가두고 있다. 이런 감옥에 분노한 18세 미만 어린이들이 그런 어른들한테 복수하고 싶은 마음으로 자살하는 수가 벌써 10년 넘게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어린이들에 의한 존속 살해나 상해도 가파르게 늘어나는 상황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09년에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들이 학습해야 하는 시간은 세계 최장이다. 잠을 자거나 놀 수 있는 시간은 주요 비교국 가운데 가장 낮다. 학업 부담은 가장 높고, 삶에 대한 만족도는 꼴찌다. 어른들도 하루 8시간, 주5일 일하는데 어린이들은 하루 12시간 넘게 학습이라는 노동을 해야 한다. 대부분 자발적 노동이 아니라 강제노동이라 더 힘들 수밖에 없다. 심지어 토요일과 일요일도 학원에 가서 공부하는 추세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많아진다. 학원 영업시간을 지역에 따라 저녁 10시나 11시로 규제한 곳이 있는데, 이것마저 최근에 시도 의회에서 연장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쉼이 있는 교육시민 포럼’(5.3)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학원 일요일 휴무제를 법으로 정하는 것을 지지하는 학부모들이 95퍼센트라고 한다. 공부가 노동이 된 학생들은 일주일에 하루도 마음 편하게 놀거나 쉴 권리마저 없다. 더구나 지금 우리나라 교육은 사육에 가깝다. 가정과 학교와 학원, 어디서나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치고 배우며 고요히 쉬거나 즐거이 놀 수 있는 곳이 없다. 어린이를 어린이로 대우하지 않고, 어른들 마음대로 가두고 어른들 입맛대로 기르는 걸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린이를 완전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미숙하고 어리석은, 어른의 보호가 필요한 소유물이라는 인식이 견고하기 때문이다. 그 깊은 내면에는 돈을 삶의 중심으로 보는 황금만능주가 있다.

돈 욕심을 부리다 어린이들을 빼앗긴 이야기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람’이라는 동화가 있다. 독일 그림형제가 하멜른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채록해 1812년 처음 펴낸 어린이를 위한 책에 ‘하멜른의 아이들’이란 이름으로 발표한 동화다. 쥐 때문에 어려움을 겪던 마을에 쥐를 잡아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나 마을에서는 돈을 주기로 했다. 그 사람이 피리를 불자 모든 쥐가 따라 나가 강물에 빠져 죽었다. 그런데 마을 어른들은 돈이 아까워 피리 부는 사람을 마을에서 쫒아냈다. 그는 어느 날 어른들이 일하러 나가고 없는 마을에 와서 피리를 불었고, 아이들은 그를 따라갔다. 귀머거리와 눈먼 아이 둘만 남고 다른 아이들은 모두 없어졌다. 쥐잡이가 어린이를 잡는 사냥꾼으로 돌아온 것이다. 어른들은 그때야 후회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이 동화는 독일 하멜른에서 1284년 6월 26일 어린이 130명이 사라진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두고 있다. 700년이 넘은 지금도 하멜른에서는 당시 어린이들을 잃어버린 거리를 춤과 음악을 금지하는 구역으로 정해 놓고 있다. 4.16 세월호 참사 역시 어른들의 황금만능주의 때문에 수많은 어린이를 비롯한 사람들이 우리 옆에서 없어진 사건이다. 이렇게 명백한 사건을 사고라고 우기는 국가, 자식 잃은 부모들한테 이제 잊을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어른들이 있다. 삶의 가치 중심을 돈에 두는 이상 어린이들은 우리 곁에서 계속 사라질 수밖에 없다. 한 사회가 어린이들을 잃는다는 건 곧 내일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어린이가 없어지는’ 현실이다. 세계 최저인 출산율로 생물학적인 어린이가 급격히 줄고, 어린이에 대한 사회적인 억압과 왜곡 때문에 심리학적인 어린이도 거의 다 사라지고 있다. ‘어린이다운 어린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생물학적인 어린이가 태어나지 못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은 심리학적인 어린이가 없어지는 것이다. 2015년 강원도교육청 제안으로 전국교육감협의회에서 어린이들이 놀 권리를 지켜주자고 선언했다. 학교에서 하루 30분이고 한 시간이고 놀 시간을 주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시행한 학교 현장보고에 따르면 놀 시간을 줘도 못 노는 아이들이 있으니, 놀이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한다. 놀이 시간을 주어도 놀 수 없는 아이들이 늘어난다는 건 어린이들 몸과 마음이 그만큼 병들고 있다는 증거다.

아기들은 옆에 있는 아기가 울면 따라 운다. 같이 슬퍼한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나 생명이 슬퍼할 때 같이 슬퍼하는 어린이들이 줄어들고 있다. 오히려 더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걸 재미로 삼기도 한다. 어린이 마음이 사리진 어린이들은 영악하고 작은 어른이 된다. 1923년 제1회 어린이날 선언문, 세 가지 어린이해방선언을 지금 이 시대에 되살려 실천해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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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님은 어린이문화연대 대표이다. 좋은 책을 바탕으로 연극, 노래 놀이, 마술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 활동을 아이들과 나누고자 활동하고 있다. 《어린이 문화 운동사》, 《삐삐야 미안해》, 《아이코 살았네》, 《우리말그림책 비》 책을 펴냈다. 올 3월 1일부터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 공동대표를 맡아 ‘손바닥헌법책’ 보급과 대한민국 연호(대한민국 98년) 쓰기 운동을 하고 있다.

* 2016년 5월호 <지구아이> 특집 글의 일부를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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